[그림이 있는 아침] 파도처럼 요동치는 모네의 마음

입력 2022-07-15 17:27   수정 2022-07-16 00:08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 끝에 아슬아슬 몸을 담근 ‘코끼리 바위’, 뒤로 펼쳐진 푸른 초원과 아기자기한 해안가 마을….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가 에트르타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다. 소설가 알퐁스 카는 “누군가에게 바다를 보여줘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에트르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모파상이 이름 붙인 코끼리 바위는 깊은 파도 속으로 들어가는 코끼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주변 바위들까지 합쳐 코끼리 가족을 이룬다. 대자연의 압도적 풍경은 많은 소설가를 자극했다. 알렉상드르 뒤마(몽테크리스토 백작),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 사뮈엘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 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모두 이곳에서 소설의 밑그림을 그렸다.

화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스타브 쿠르베, 외젠 부댕, 앙리 마티스 등 19세기 대표 화가들이 에트르타에서 색과 빛을 탐구했다. 이곳을 가장 깊게 관찰한 화가는 클로드 모네(1840~1926). 모네는 이 바다에서 5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몇 시간이고 바다를 바라봤다.

에트르타를 그린 다른 그림과 모네의 그것은 다르다.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빛의 화가’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때론 잿빛 구름을, 그 아래 펼쳐진 성난 파도를, 힘겹게 배를 정박하는 사람들을 포착했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흐름과 구름의 움직임, 그걸 비춰내는 물빛을 연구했다. 모네에게 1883년 에트르타 시기는 인상파 화풍을 완성한 결정적 시간으로 꼽힌다.

모네는 왜 그렇게 이 바다에 집착했을까. 당시 모네는 중년의 열병을 깊게 앓고 있었다. 아내 카미유를 잃고 4년이 지나 두 아들을 혼자 돌보기 어려웠던 모네는 후원자인 에르네스트 오슈데와 함께 살아야 했다. 두 가족이 동거하던 중 모네와 오슈데의 아내 알리스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관계를 눈치 챈 오슈데는 집을 나갔고, 모네는 두 아이와 알리스의 여섯 아이까지 9명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오슈데가 아내를 회유하러 찾아올 때마다 차마 그를 마주할 수 없었던 모네는 붓을 들고 에트르타 바다로 도망치듯 향했다. 모네가 그 시절 이성과 본능 사이 느꼈을 복잡한 감정은 화폭에 고스란히 담겼다. 때론 더 거칠게, 때론 더 어둡게, 때론 더 역동적으로. 어쩌면 모네는 빛과 바람이 동시에 휘몰아치던 자신의 마음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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